The Age Of Loss : The Elegant Toilet

상실의 시대 : 우아한 변기   /  ARTIST NOTE

한국의 정치와 역사는 고통과 수난의 시대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독재자의 딸, 그녀는 한국의 정치와 현대사를 관통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촛불 민심으로 탄핵되고 구속이된 그녀는, 독특한 기행으로 더 회자가 되었다.
바로 변기 공주라고 불릴 만큼 유별나게 변기에 쏟은 애정과 집착 때문이다.
그녀의 변기는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기호와도 같다. 배설, 소화, 쌓여진 배설물,
그녀는 최고 권력자 자리에서 깨끗한 화장실처럼 보이고자 했지만 실제는 어떠한가?

정치는 우리의 이상과는 달리 인간에 의해 탐욕스럽고 더럽게 변질되어 간다.
변기는 인간의 가장 더러운 변을 처리하는 도구이다.
정치와 변기는 우아하게 포장된 모습에서 가장 은밀한 공간에서 가장 더럽고 추악하고, 혐오스러움을 품고 있다.
그녀가 끌어안고 집착 했던 변기는 배설하고 담겨지고 버려지지 못한 한국의 적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녀가 싸 놓은 배설의 끝없는 쾌락속에는 누군가에게는 권력과 돈과 탐욕이 담겼다.”
“그녀가 싸 놓은 배설의 끝없는 쾌락속에는 시민들의 희생과 눈물과 한이 담겨있다.”

그녀가 배설한 모든 정치적 행위들이 탐욕과 뒤섞여 그녀에게 충성했던
국가기관과 권력자들과 언론과 사법기관들과 지지했던 파시스트 우익들이 모여서 만든 배설물이 함께 섞여있다.
그녀는 더러운 배설물을 뱉어내고, 위정자들은 변기를 막아놓고, 우리 시민들에게는 사회적 적폐만을 남겨놓았다.

그녀는 자신이 추악하고 역겨운 그 모든 배설물에 대한 일들의 책임을 부정하고 변명하고 있다.
힘없는 한 여성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큰 권력을 남용하여 무고한 시민들에게 무자비한 국가 폭력을 휘둘렀다.
광화문에서는 애국을 빙자한 파시시스트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협한다.

아직도 그녀는 죄가 없다며 마치 왕권시대의 여왕을 대하듯,
그녀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는 탑골부대(태극기부대)에게 이 작품을 선사한다.
그리고 동시대의 사회 정치 상황을 503호의 변기로 풀어 만든 이 작품을 통해서
그녀와 그녀에게 충성하며 국가 폭력을 남용했던 권력자들에게 선사하는 오마주 작품이다.

평론글

- 시대를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각

예술가들은 20세기 초반을 거치면서 이상향적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형식의 탐구에서 벗어나 현실에 대한 개별 예술가의 세계관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다다이스트인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 1891 ~ 1968)는 전체주의 독재자 히틀러를 풍자하는 다양한 이미지를 생산하여 자신의 정치적인 관점을 시각화했다.  

또 그 이후에 등장한 개념미술가나 포스트모더니스트들도 개성적인 스타일과 표현방식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패러디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민중미술가들은 우울한 정치사회적인 현실에 저항하는 작업을 발표했다. 이후 한국의 예술가들은 서양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세례로 인하여 정치적인 현실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문화적인 현실에 대한 주관을 느낄 수 있는 혼합매체적인 작업을 발표했다.

한국사회는 지난 8 년여 동안 정치, 사회문화 등 사회전반에 걸쳐서 퇴행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대외적으로도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초반처럼 복잡한 동북아정세속에서 새로운 위기감이 느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경직되어 있고 사회적으로는 혼란스럽고 불안한 사건이 연이어서 발생하고 있다. 또 북한의 핵문제로 인하여 안보상황도 심각하게 느껴지고 있고 정부도 대내외적인 문제에 대응하는 태도가 무능함을 환기시키고 있다. 그 결과 국민들은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대내외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국익을 위하는 입장에서 대처하기보다는 정쟁에 이용하여 정권을 보위하는 데만 몰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경제정책도 거시적인 정책뿐 아니라 서민경제를 비롯한 모든 정책이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사회적으로도 혼란스럽고 미래가 불안하다. 여기저기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있고 사회안전망 또는 재난에 대비한 시스템이 없다는 것을 최근 몇 년 동안 연이어서 발생한 안전사고가 일깨워주고 있다. 정부가 국민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치적으로도 퇴행하고 있고 언론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기능을 못 할뿐 아니라 오히려 여론을 왜곡시키고 있다. 균형감각을 상실하여 언론으로의 기능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다영은 예술가로서 정치, 사회문화적인 현실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작가의 이러한 세계관을 반영한 작업이 이번에 발표하는 ‘상실의 시대’시리즈다. 부조리한 정치, 경제, 노동, 사회문화적인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결과물이다. 작가는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처럼 콜라주 기법을 이용하여 지난 몇 년 동안 한반도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러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이미지를 생산했다.

언제부터인가 언론이 특정한 정치세력에 의해 장악되어 정치뿐 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서 발생하는 왜곡된 현실을 비판하고 감시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상실했다. 이러한 언론을 대체하여 자신 혹은 국만의 눈으로서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북한정권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이미지를 생산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해야하는데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는 특정한 정파나 특정 정치인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즉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절대 권력자의 권력을 위한 장치로써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사회 안전시스템은 붕괴되어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계층 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만 심화되고 있다. 정부, 국회, 입법부, 사법부, 정당 등 국민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기관들이 그 기능을 상실하고 권력의 눈치만 보고 있다. 이다영은 이러한 상황을 감시자의 눈으로 풍자했다.

작가는 자신의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여러 이미지를 수집하여 디지털프로그램 선상에서 재구성했다. 마치 20세기 초반에 존 하트필드가 발표한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풍자적인 작업을 보는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20세기 초반이후 예술은 시각적인 것에서 탈피하고 개념화되고 현실과 유리 된 것이 아니라 현실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미적인 주관이나 세계관을 제시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작업이 지난 1세기 넘게 주류적인 경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물론 1980년대 후반에 동구권이 몰락하고 이념경쟁시대가 종언하면서 이념이나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작업은 그 비중이 줄어들고 지극히 사적이고 일상적인 관심사를 다루는 작가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2000년대 후반부터 어떠한 측면에서는 40 여 년 전으로 퇴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다시 민중미술이 부각되고 있는가하면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예술가도 늘어나고 있다. 

이다영도 늘 정치, 사회문화적인 현실에 주목하며 퇴행하고 있는 것 같은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 결과물을 정리하여 이번에 발표한다. 예술가 개인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울림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는 측면에서 미학적인 당위성을 성취했다. 이 지점에서 작가 이다영의 미래를 기대케 한다. 또한 좀 더 정제되고 성숙한 이미지를 생산하기를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글: 김영태 / 사진문화비평, 현대사진포럼대표


2016년 11월 '수원국제사진페스티벌'에 전시했던 첫번째 '상실의 시대 1'에 쓰여진 평론글입니다.

작품 작업에 대하여...

이 작품은 실제 변기에 도색과 추가 설치 작업을 해서 촬영하여 제작한 작품들입니다. 제작비가 없어서 변기 한개로 준비한 재료들로 설치후 촬영을하고 다시 교체하는 방식으로 이미지 작업을 끝냈고, 이 작품 작업에 실제적 협찬과 촬영에 도움을 주셔서 작가 지원을 해주신  "LF 스튜디오"의 임도형 작가님에게 가슴 깊이 감사의 인사들 드립니다. 

‌작품 제작은 실물 작품 제작 - > 촬영 - > 이미지 보정 - > 전사지에 프린팅 - > 이후 알루미늄 판에 바탕작업 - > 전사작업 - > 아크릴 보조재로료 후작업 - > 마무리

‌이렇게 다양하고 긴 작업기간을 거쳐서 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실물 변기는 어떻게 되었나?

‌12개의 작품중에서 마지막으로 제작한, 위안부 협상 비판 작품은 당시 수요집회에 맞춰서 일본 대사관 맞은편 위안부 소녀상 근처에 실제 설치를 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일본대사관 측에서 철거를 했는지 작품이 일주일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이렇게 실물 변기 작품은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프로파간다 아트는 그렇습니다.
‌작가가 정치적 비판을 하고 목소리를 낸다는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늘 상식에서 생각을하고, 마음은 권력자들이 아니라 평범히 살아가는 시민들 사이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며, 약자의 편에 서서 함께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것.

‌사진을 하든지, 사진을 매체로한 Fine Art를 하던지, 작품작업은 늘 아름다운것만 하는것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때론 정치비판과 때론 사회적인 목소리를 작품을 통해 내는 것도 작가가 해야하는 영역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대단한 작품은 아닐지라도, 멋진 작품이 아닐지라도, 작품을 통해서 함께 공감하고 
‌사회적 목소리를 낼수 있다면, 전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감사합니다.

‌- Evelyn Lee (이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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